| [논평] 흉상으로도 고향을 못가는 윤이상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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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 선생의 흉상이 7개월째 인천세관에 묶여 있다. 이에 대해 17일 통일부 부대변인 이종주는 정례브리핑에서 “관계기관과 흉상의 반입 문제를 협의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의 허가아래 작년 6월에 인천항에 들어왔음에도 무려 7개월째 선생의 통영 생가터 ‘윤이상 기념관’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가 관계기관의 저지에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그 관계기관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국정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관여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일의 성격상 누구도 그 말을 수긍하지 않고 있다.
윤이상 선생은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고향을 찾지 못했다. 악명높은 박정희 파쇼폭압기구 중앙정보부가 1967년 독일, 프랑스의 유학생, 교민 194명 등에게 용공, 간첩단 혐의를 씌어 납치, 고문, 투옥하는 중에 윤이상 선생은 간첩으로 지목되어 그 생고생을 다하였다. 선생은 유럽의 음악인들과 독일정부의 거센 박정희 규탄에 힘입어 2년을 복역하고 가까스로 석방되었으나 그 뒤로 그리운 고향 통영은 물론 남녘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선생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특히 남달라 “부러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통영 앞바다를 지나치면서 고향땅을 바라봤”다. 그러나 독재정권 누구도 탄압이후 사죄하지 않았으며 윤이상 선생은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선생은 1995년 11월 타계했다. 그러나 건재한 파쇼폭압기구 안기부, 국정원에 의해 그의 유골은 여전히 고향에 안장되지 못하였으며 오늘에는 그의 흉상마저 반입이 저지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원세훈의 짓이든 청와대 이명박의 짓이든 정신이상짓을 멈춰야 하며 피해망상증 또는 과대망상증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윤이상 평화재단’의 대표발기인이기도 했다. 원세훈은 2006년 4월 금강산에서 개최한 ‘윤이상음악회’에 서울시행정부시장 직책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독재 폭압기구들이 그를 ‘간첩’으로 낙인하고, 특히 선생이 범민련 해외본부 초대의장이었던 조건에서 보안법으로 마구 재보자면 그것 자체가 이적행위다. 당시는 이명박, 원세훈이 대통령, 국정원장이 아니니 통치행위로도 정상참작이 될 수 없다. 여차하면 궁지몰릴 저희들 사정은 전혀 생각지 않고 지금 원세훈이나 이명박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될 것이라고 ‘흉상’ 하나를 놓고 파쇼폭압기구들의 지침을 따르거나 지휘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낙없이 제 정신이 아니다.
윤이상 선생은 ‘동양과 서양, 남측과 북측, 정치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융합하여 현대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연 세계적 거장’이다. 원세훈, 이명박이 깊든 얕든, 장식용이든 사교용이든 그를 기리는 현장에 발을 들여놓은 흔적이 있음에도 지금은 ‘흉상’ 하나에 벌벌 떠는 것은 왜인가. 그 공포심은 실상 파쇼폭압기구와 보수 떨거지들의 눈초리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국정원장, 대통령이 얼마나 만인지상, 무소불위의 지위인가를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인가. 물질발전이 고도화되는 21세기라서 그런지 사이코패스도 여러 유형으로 갈리는 것 같다. 그러나 피해망상도 과대망상도 당나귀 귀만 아니면 자가진단이 가능하다.
내달 19일 ‘윤이상 기념관’이 개관한다. 원세훈, 이명박은 객기부리지 말고 흉상 ‘반입저지’를 빨리 풀어야 한다. 여론이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다. 2010년 2월 20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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