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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그 추운 날씨에 크레인 밑으로

아빠를 보러 오겠다고 온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빠~”부르며 달려오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아이를 안아주는 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의 미래를 죽을 힘을 다해 지켜내기 위해 이 겨울,

아빠가 집에도 못 들어간다는 걸 아이도 알까요.

며칠 만에 만난 마누라에게도 미안한 마음뿐

집에서 애들이랑 뭘 먹고 사는지 묻지도 못하고

“춘데 말라꼬 왔노” 불퉁하게 한마디 던질 뿐입니다.

마누라의 가방에 삐죽 나와있는 벼룩시장을 보고 또 마음이 내려 앉습니다.

일자릴 알아보는 걸까요. 아니면 더 싼 집을 찾아 다니는 걸까요.

애 딸린 마누라가 벌어봐야 편의점 알바이고 마트 비정규직일텐데...

아이가 뛰놀기에 공장은 너무 춥고 아이를 오래 바라보기도 마음이 고달퍼

서둘러 보내놓고는 추운 거리를 서성거리며 하염없이 담배만 피워뭅니다.

앞엔 허허벼랑인데 자꾸만 등을 떠미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해고통보를 받은 이후로는 사소한 일에도 화가 솟구치고

작은 일에도 설움이 북받치곤 합니다.

 

작년 겨울, 출근시위를 할 때 백일 떡을 받아 먹었던 그 아들내미가 돌이라고

크레인위에서 돌떡을 받아 먹었습니다.

예준이가 두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민석이가 세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유주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다림이가 중학생이 되는 것도

현서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이 공장에서 지켜보게 될거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하루 100만원짜리 인간이 됐습니다.

징역 살 땐 하루에 45220원씩 밖에 안쳐주더니, 제 가치를 이제야 인정받는거 같습니다.

근데 이 투쟁 깨지면 저는 진짜 거시기 됩니다.

한진 자본은 2003년 시나리오와 똑같이 가고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크레인으로 하루 100만원을 벌어서

이 크레인을 운전했던 하청노동자에겐 얼마의 월급을 줬습니까?

 

한 이틀 디지게 추웠습니다.

안에 있던 것들도 다 얼어서 사과는 사과탄이 되고 바나나는 곤봉이,

시루떡은 보도블럭이 돼있었습니다.

그 추운밤에 이 크레인을 지켜주셨던

사수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이 피워올리는 가슴속 장작불로 인해

저는 동상도 안 걸리고 감기도 안 걸리고 잘 견뎠습니다.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수한 고비를 넘으면서

수많은 무용담을 만들어 오셨던 아저씨들.

그 무용담을 신화처럼 들으며 한진 조합원이라는 자긍심을 키워왔던 동생들,

서로 서로 잘지켜줍시다.

부디 잘 이겨내고 잘견뎌냅시다.

총 맞은 동지들 우리 단결이라는 방탄조끼 입었잖습니까?

버티면 이기는 시간싸움이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

어차피 구제역 때문에 설날 고향도 못갑니다.

 

저는 우리 한진중공업 조합원동지들 그리고 연대투쟁을 몸으로 실천하시는

동지여러분들을 끝까지 믿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11월 19일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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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0:38 자료실/보도

한국기독교장로회 동강 살리기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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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연합뉴스) 배연호기자 =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와 신도대표 1백여명은 5일 영월군 영월읍 어라연 돌섬에서 동강을 살리기 위한 예배를 드렸다.

`정선 아라리를 싣고 동강은 흘러야 한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예배에서 참가자들은 성명을 내고 "정부의 영월댐 건설계획은 이미 명분을 잃어 버렸다"며 "천혜 비경, 풍부한 생물자원, 문화의 보고를 수장시키려는 정부에 강력한 경고와 함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창조질서를 보존한다는 마음으로 십자가 행진에 나설 것이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박종화(朴宗和)총무는 "직접 동강에 와서 보니 도저히 댐을 건설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을 느꼈다"며 "청와대와 새정치국민회의에 분명한 반대의 뜻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이날 영월댐 백지화 3개군 투쟁위원회 정동수(鄭東洙)위원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댐건설 저지운동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이날 예배에서는 정선아라리연구소 진용선소장의 아라리에 대한 특강과 신바람 춤패 `출'의 `동강의 탄식'이라는 춤공연이 있었다.

byh@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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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0:33 자료실/보도

"이제는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당신"...하늘도 울린 노제

이준형 기자 lee@vop.co.kr 입력 2010-01-09 20:15:02 / 수정 2010-01-09 20:59:40
"이제는 사진과 기억으로만 볼 수 있는 당신,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당신, 그 마지막 모습은 왜 이리 가녀리답니까. 우리 아이는 '아버지가 왜 이렇게 작아? 애기같다'라며 말문을 잇지 못합니다. 정말이지 너무 불타서..."

355일만에 돌아온 남일당 현장,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노제에서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 씨는 전 날 입관식을 떠올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권 씨의 울음소리가 하늘도 울린 것일까? 조금씩 흩날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곧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노제에 참석한 시민들의 어깨도 들썩였다.

"남편의 다리는 젓가락 같았습니다. 수의를 입혀드리고 흰 천으로 염습을 해도 그 모습은 너무나... 다시 한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차마 화장을 못했습니다. 불태운 사람을 다시 불길로 모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권씨는 불에 타 숨진 남편을 또 한번 화장할 수 없었다며 '오열'했다.

서울역 광장 영결식부터 함께 한 시민들은 아직 참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을 가득 메웠다. 그 주변엔 방패를 들고 보호구를 착용한 경찰 300여 명이 배치됐다. 과잉진압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부른 경찰은, 이날도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배려해주지 않았다.

노제 사회를 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355일이 흘러 장례는 치르지만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또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가 돼 싸워나갔으면 좋겠다"며 "오늘 노제가 열사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열사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결의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리의 전도사' 문정현 신부도 정부의 재개발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재개발, 뉴타운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오래부터 살아온 사람들, 그 공동체를 깨뜨릴 수는 없습니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함께 살 수 있는 뉴타운을 건설하라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권력이나 재벌의 이권이 있다면 그 순간부터는 재개발을 중단하라 이겁니다. 우리 유족들이 뜻을 이뤘고, 용산 철대위가 그 뜻을 이뤘습니다. 여러분, 열사분들의 죽음은 결코 헛될 수 없습니다."

송경도 시인이 고인들에게 바치는 조시로, '노래를찾는사람들'과 춤패 '출'은 각각 노래와 춤으로 고인들과 유가족을 위로했다. 유가족과 참가자들은 노제를 마친 후, 범국민장 장례위원회가 준비한 10대의 버스에 탑승해 고인들이 안치될 마석 모란공원 묘지로 출발했다.

앞서, 이날 노제는 오후 3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무대차량을 억류해 행사가 2시간 가량 지체됐다고 장례위 관계자는 전했다. 결국 노제 1시간여 전부터 미리 현장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언 발을 구르며 기다려야 했다.

또 이날 오후 4시30분께 노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남일당 건물 앞 도로로 나오자 방패를 앞세운 400여명의 경찰이 시민들을 인도 위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채 1분도 안돼 반대편 인도로 급히 돌아갔다.

한 참가자는 "왜 고인들이 가시는 마지막 길까지 이렇게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다른 참가자도 "정말 알 수 없는 정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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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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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0:29 자료실/보도
동희오토 현장에서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현대기아차 양재동 본사앞 동희오토 투쟁승리 보고대회

백일자(현장기자) 2010.11.04 16:23

▲  문화제는 춤패 출의 화려한 율동으로 시작됐다. 동희오토 심인호 조합원과의 함께 공연을 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3일 저녁 7시 30분부터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동희오토 투쟁승리 보고대회가 열렸다. 동희오토 조합원들이 양재동 농성을 시작한지 115일차, 간접고용 철폐 공동농성단의 농성 35일차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대표는 “2001년 3월 29일 한통계약직 목동 전화국 점거 투쟁이 생각난다. 눈발 날리던 날 특공대에게 쫓기다 끌려 내려온 동지들에게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니, 옥상 끝까지 쫓겨 갔을 때 함께하는 동지들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고 했다.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외롭고 힘들게 시작됐다. 그 투쟁 때문에 오늘이 있을 수 있었다. 투쟁승리보다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하해야 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한 “이제 투쟁사업장 현안문제 해결에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 파견제, 간접고용 등 지금의 제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 큰 절을 올리는 동희오토 조합원들

▲  참가자들의 요청으로 노래를 부르는 동희오토 조합원들

동희오토 이백윤 지회장은 “제일 힘들었을 때는 내가 해고됐을 때가 아니라, 내 뒤에 해고된 조합원의 얼굴을 볼 때였다. 아무 것도 못할 때 가장 힘들었다. 기껏해야 조끼가 잘 어울린다. 경비랑 한판 싸우면 밥맛이 좋아진다 말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투쟁한 것 원직복직, 노조활동 인정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 아니었으면 현장 복직 없었을 것이다. 해고자 7명이 아니라 900명이 함께 투쟁하도록 현장을 조직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태수 조직부장은 “동지들의 정성, 연대에 비해 결과가 부족하다. 오늘 조인식 싸인한 합의안을 사측이 뒤집을 수는 있겠지만, 그 순간 양재동은 다시 간접고용 철폐 투쟁으로 가득할 것”이라며 “간접고용 철폐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 더 많은 하청업체 조직해서 현대자본과 맞장 뜨겠다”고 했다.

결의대회는 공동농성 집행단위와 대표단들의 발언 뒤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며 마무리 됐다.

한편 3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사측과 조인식을 가졌다. 간접고용 철폐 공동 농성단은 해산하지 않고 이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과 파견볍 철폐 투쟁 등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  동희오토 노동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몸짓선언 공연. 참가자와 공연자가 하나가 되어 '노동해방'을 외쳤다.


▲  농성투쟁 중 가장 신나는 뒤풀이는 오늘이 아니었을까. 많은 곳에서 투쟁 승리의 잔치가 벌어질 수 있길 바란다.

공동농성 대표단 한마디

“연대단위가 함께 전선 쳐서 투쟁을 승리했다. 이번 투쟁은 모범적인 투쟁이었다. 장기투쟁사업장, 비정규직 사업장과 함께 전선 확대해갔으면 한다. 이후 전국노동자대회, G20도 힘차게 투쟁하자.”
-민주노총 이재웅 서울 본부장

“집회 전에 공동농성 대표단 회의를 했는데, 간접고용 투쟁은 계속 이어가자고 했다. 기륭과 동희오토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서울의 재능투쟁, 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투쟁 때에도 함께 할 것이다”
-진보신당 신언직 서울시당 위원장

“노동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동희오토 동지들 감사하다. 연대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보여준 동지들 감사하다.”
-민주노동당 김종민 서울시당 위원장

“투쟁에 결합한 동지들 하나하나가 아니었으면 투쟁승리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체가 되는 투쟁을 하자”
-노동전선 조희주 대표

“기륭에 이어 동희오토 투쟁 승리까지 너무 기쁘다. 동지들 모두 고맙다. 투쟁하는 동지들이 자랑스럽다”
-금속노조 김형우 부위원장

“싸움은 기세다. 이 기세를 몰아 간접고용 철폐 그날까지 가자”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대표

“노동해방 선봉대 돌다가 전주에서 올라왔다. 전국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12개다. 4-5년째 잘 알려지지도 않은 채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노동자들의 힘으로 자본을 거꾸러뜨리는 투쟁을 하자. 11월 6일 전야제, 11월 11일 G20 반대투쟁 힘차게 하자."
-사노위 이경수 대표 (기사제휴=미디어충청)

▲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는 공동농성단 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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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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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6:52 자료실/보도

외대학보 문화보도면  

◆ 민족춤패 ‘출’의 춤극 ‘유언’

“내 땅에서 흰옷은 과녁이었소”

평온한 산골 마을. 얼굴이 빠알갛게 상기된 갈래머리의 꼬마 여자아이들은 저들끼리 즐겁게 뛰논다. 곧이어 ‘우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고 여자아이들은 전투기를 쫓아가며 ‘와아’하는 함성을 지른다. 일하던 마을 사람들 또한 제각기 머릿수건과 저고리 등을 흔들며 전투기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갑자기 전투기에서는 손흔드는 사람들을 향해 총알을 퍼붓고 사람들은 하나둘 꽃잎처럼 스러져간다…

지난 11일(목)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민족춤패 ‘출’의 춤극 ‘유언’은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을 주제로 하고 있다.

대사나 소품 없이 몸짓, 손짓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이 공연은 2대에 걸친 미군에 의한 학살을 그 내용으로 한다. 주인공 어머니는 60여년간 친구들과 가족들이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비극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러다 그녀의 딸 또한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군에 의해 살해당하자 어머니는 기억하기 싫었던 옛날일을 떠올리며 다시는 이땅에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극은 끝이난다.

마지막 부분 어머니의 한을 나타내는 독무에서 주인공은 신들린 듯한 무당춤 연기를 보여줘 많은 박수를 받았다.

40분여의 짧은 시간안에 섬세하고 간결한 몸짓, 흰 천의 절묘한 조화가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 공연은 특히나 열린 공간에서 펼쳐져 길을 지나던 많은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또한 부대 공연으로 청년 노래패 ‘우리나라’ ‘솟대’의 판굿, 경기남부총련 노래단 ‘천리마’의 공연이 이어져 공연의 감흥을 돋웠다.

공연을 관람하던 주부 이미석씨(55)는, “너무 마음이 아픈 줄거리다. 사회적으로 많이 여론화 되었으면 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공연을 기획한 춤패 ‘출’은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고 55년의 한을 풀고자 이 공연을 마련했다”고 공연의 의의를 밝힌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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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6:50 자료실/보도

"남측에도 조선무용이 있다"

민족춤패 출, 통일된 조국건설의 염원 춤으로 승화

이동권 기자

숨 막히는 열정과 독창적인 안무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던 민족춤패 '출'이 통일된 조국 건설의 염원을 담아 '나래쳐라 겨레의 춤' 공연을 펼친다. 이번 무대에서는 창작 무용극 '염원은 하나'를 비롯해 조선무용 '삼인무', '진주의 무희', '두레놀이북춤', '쌍검무', '도라지춤', '목동과 처녀', '쟁강춤' 등이 선보일 예정이다.


쟁강춤 ⓒ출ⓒ 출

우리 민족의 자주민주통일 꿈꾸는 민족춤패 출의 '나래쳐라 겨레의 춤' 공연이 14일 오후 7시 30분 CTS 아트홀에서 열린다.조국통일에 대한 염원 하나로 살아 온 무용예술가 백홍천 선생님으로부터 지난 5년동안 전수받은 조선춤의 성과를 선보일 이번 공연은 두 세대를 잇는 민족의 혼을 펼쳐 보이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민족춤패 '출' 홍경희 씨는 "분단이 되면서 우리 춤의 발전에는 남측이 없었지만 북측은 우리 고유의 춤을 발전해왔다"면서 "이번 공연은 남측에 있는 조선무용을 보여주고, 거기에도 우리의 정서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조선무용발표형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래쳐라 겨레의춤' 공연에 소개되는 춤은



도라지꽃 ⓒ출ⓒ 출

군무 '두레놀이북춤'은 1965년 창작공연 됐다. 이 작품은 1968년 재창작 돼 '협동벌의풍년맞이'로 개명됐다. 안무는 최승희제1직계제자인 김락영(72세) 선생이 맡았다.이 군무는 우리 선조들의 집체적 지혜에 의해 창작된 무용유산을 현대성의 견지에서 계승발전시킨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함경남도 여흥지방의 농민들이 풍년을 경축하며 즐겨 추던 춤의 하나이다. 군무 '쟁강춤'은 1984년 창작됐다. 이 춤은 1984년에 최승희 제1직계제자 김해춘 안무가가 오늘의 현실과 미감에 맞게 대폭개량하고 완성시킨 명작품이다.이 작품은 살기좋은 금수강산에서 천년만년 행복을 누리려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 이땅에서 사는 무한한 긍지를 춤가락에 담았다. 독무 '쌍검무'는 최승희 원작의 1934년도작품이다.칼춤은 오랜 옛날부터 무술훈련과 나라를 지켜 외적을 물리친 우리 민족의 애국주의정신과 결부돼 있으며, 슬기롭고 용맹한 우리 민족의 성격이 잘 반영되어 있는 무용이다. 독무 '도라지꽃'은 1966년 김락영 선생이 창작한 작품이다.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을 이겨 낸 우리 민족의 불효불굴의 투쟁정신과 고귀한 애국정신을 형상화했다. 이밖에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우리 나라 바다의 풍부한 자원과 황홀한 바다세계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독무 '진주의 무희', 활달하고 박력있는 독특한 율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생기발랄한 기질을 재치있게 표현한 '삼인무' 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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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성미산마을극장
출연진 ; 오현경,장세린,김태균,김한봉희
스텝;이은하
촬영;이명희
관객;150여명의 어린이와 가족들.

환경무용극 '공생'을 어린이집행사에서 공연하기는 처음이다.
1부는 어린이들이 준비한 공연들(사실은 선생님들이 준비했다가 맞겠다). 2부는 엄마,아빠들의 공연이었다.
공생은 1부와 2부 사이 특별공연으로 소개되었다. 초대장에는 송윤서어머니 무용공연이라해서 모두 내가 솔로춤을 추는걸로 알고 있었다. ㅠㅠ

공연은 어린이대상 공연임을 감안해 김한봉희가 붕어분장을 하고 앞풀이를 했다. 평상시에 이런공연을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 관객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극장공연인김에 홍보영상을 제작하자는 취지로 영상촬영을 준비해갔는데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관객이 들어와 공연중엔 촬영이 불가능했다. 사전 리허설촬영을 안했다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뻔했다.  

공연이 끝나고 퇴장로가 관객석을 뚫고 가야하는 관계로 출연진들이 많은 무대장치들을 옮기는데 강의요정이 몸체만한 바위를 번쩍들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  출연진 애인들의 출동으로 무거운소품들은 별무리없이 옮길수있었다. 이자리를 빌어 감솨!!

부디 공생이 어린이들의 큰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남았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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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13:07 자료실/보도
(제가 (오현경임다^^;;) 출 들어오기 전 기사를 찾았어요..ㅋㅋ 아래 은하단원의 9년 전 공연 사진이 있네요..^^)

경상대, 효순.미선 추모문화제 개최

▲ 경상대노래패 연합의 노래 공연- 얼마나 더
2002 강무성
지난 27일 경상대학교 중앙분수대에서 200여명의 학우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효순·미선이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한을 풀자'라는 슬로건으로 경상대 총학생회에서 준비한 이 행사는 '여중생 살인자'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오후 6시, 행사가 열리는 경상대학교 중앙분수대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빠른 손길로 영상장비를 손보고 있는 진행요원들과 마지막 연습을 하는 공연 참가자들의 모습이 분주했다.

무대장치로 태극기 옆에 성조기를 덮어 미군에 의해 압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형상화했고, 반미의 내용을 담은 민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부대행사로 학우들의 추모시, 4행시, 추모글 등을 전시했다.

행사 예정 시간인 7시가 다가오자 이호종 총학생회장은 영정 앞의 초에 불을 붙이며 "이미 소녀들의 몸은 차디찬 땅 속에 묻혔어도 우리의 가슴에는 묻히지 않았다. 주권이 없는 이 나라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 땅의 자주를 되찾아가는 발걸음에 우리 2만 개척학우들도 함께 하자"며 주위를 지나는 모든 이에게 추모문화제에 동참을 해줄 것을 호소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가는 빗줄기가 내려 분위기를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 새내기들의 반미 문선-미군은 이땅을 떠나라
2002 강무성
1부 행사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50여 년 전 양민학살부터 미선이, 효순이 살인사건까지의 미군범죄를 다룬 동영상 상영으로 시작되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난 분수대 무대 앞에선 사대부고 2학년 이아람양의 여중생 추모편지 낭독이 있었다.

이 양은 추모편지에서 "무엇보다 억울한 것은 사람을 죽이고도 뻔뻔하기만한 미군의 만행이 아니라 많은 대가를 치르고도 미국에 저자세로 연명하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국민들의 무관심이다"며 "남의 일이 아닌 내 친구의 일이고 이웃의 일이고, 가족의 일로, 미국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미국제품 불매 운동 같은 작은 실천부터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는 경상대노래패연합의 노래공연과 전환영(인문대 한문4) 씨의 추모시 낭송, 권숙진(법대 법학4) 씨의 살풀이굿으로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조수희(의대 의학1) 씨는 "이 사건에 대해 가슴 깊이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갈수록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까지 수많은 범죄가 있었고, 그때마다 여론은 들끓었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았는가. 이제는 분노를 넘어서 행동할 때이다. 누가 이 억울한 죽음을 보상하겠는가"고 말했다.

▲ 여중생의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굿을 하고 있다.
2002 강무성
2부 행사 '천배, 만배 갚아주리라!는 외부 초청공연 위주로 편성었다. 민족춤패 출의 춤공연, 진주교대 몸짓패 새벽의 반미 문선공연, 퍼킹 유에스에이를 부른 박성환의 초청공연이 있었다. 박성환씨는 초청공연에서 걸죽한 욕설로 분수대 주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민족 춤패 '출'의 박인희 단원은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분노와 울분이 함께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이번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의 근거를 찾고 한때나마 감상이 아닌 11월 민중대회에 많은 사람들이 결합이 되어 미국과의 싸움을 벌여나갔으면 한다. 민중생존권의 싸움에서 최대의 적 미국, 그 하수인들에 맞서 학생들이 앞장서서 함께 싸워나가자"고 말했다.

분수대 주변의 공연이 끝나고, 160여 명의 학생들은 가좌동 후문 거리까지 행진을 했으나 해람빌딩 앞쪽에서 경찰병력이 막아섰다. 학생들은 추모행렬을 막는 경찰들을 규탄하며 40여분 동안 대치 상태로 있다가 10시경 별마찰 없이 정리집회를 마치고 해산했다.

▲ 살풀이의 절정- 성조기를 찟는 장면
2002 강무성
정리집회에서 이호종 총학생회장은 "오늘은 아쉽게 많은 시민들을 만나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가지만 SOFA가 개정되어 미군범죄가 심판되는 그날까지 청년학생들이 앞장서 더욱 열심히 투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길게이어진 헌화행렬 한학우가 꽃을 나눠주고 있다.
2002 강무성

▲ 민족 춤패 '출'의 공연
2002 강무성

▲ 진주교대 몸짓패 새벽의 들어라 양키야
2002 강무성

▲ 초대가수 박성환씨의 엿먹어라 미국놈들
2002 강무성

▲ 영정을 앞세우고 촛불행진을 하다
2002 강무성

▲ 막아나서는 경찰들
2002 강무성

▲ 어린 소녀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자리에 왔습니다. 아저씨들 비켜주세요
2002 강무성

▲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총학생회장 이호종
2002 강무성

강무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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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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