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그 추운 날씨에 크레인 밑으로
아빠를 보러 오겠다고 온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빠~”부르며 달려오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아이를 안아주는 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의 미래를 죽을 힘을 다해 지켜내기 위해 이 겨울,
아빠가 집에도 못 들어간다는 걸 아이도 알까요.
며칠 만에 만난 마누라에게도 미안한 마음뿐
집에서 애들이랑 뭘 먹고 사는지 묻지도 못하고
“춘데 말라꼬 왔노” 불퉁하게 한마디 던질 뿐입니다.
마누라의 가방에 삐죽 나와있는 벼룩시장을 보고 또 마음이 내려 앉습니다.
일자릴 알아보는 걸까요. 아니면 더 싼 집을 찾아 다니는 걸까요.
애 딸린 마누라가 벌어봐야 편의점 알바이고 마트 비정규직일텐데...
아이가 뛰놀기에 공장은 너무 춥고 아이를 오래 바라보기도 마음이 고달퍼
서둘러 보내놓고는 추운 거리를 서성거리며 하염없이 담배만 피워뭅니다.
앞엔 허허벼랑인데 자꾸만 등을 떠미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해고통보를 받은 이후로는 사소한 일에도 화가 솟구치고
작은 일에도 설움이 북받치곤 합니다.
작년 겨울, 출근시위를 할 때 백일 떡을 받아 먹었던 그 아들내미가 돌이라고
크레인위에서 돌떡을 받아 먹었습니다.
예준이가 두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민석이가 세 돌이 되는 것도 이 공장에서 보고
유주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다림이가 중학생이 되는 것도
현서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이 공장에서 지켜보게 될거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하루 100만원짜리 인간이 됐습니다.
징역 살 땐 하루에 45220원씩 밖에 안쳐주더니, 제 가치를 이제야 인정받는거 같습니다.
근데 이 투쟁 깨지면 저는 진짜 거시기 됩니다.
한진 자본은 2003년 시나리오와 똑같이 가고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크레인으로 하루 100만원을 벌어서
이 크레인을 운전했던 하청노동자에겐 얼마의 월급을 줬습니까?
한 이틀 디지게 추웠습니다.
안에 있던 것들도 다 얼어서 사과는 사과탄이 되고 바나나는 곤봉이,
시루떡은 보도블럭이 돼있었습니다.
그 추운밤에 이 크레인을 지켜주셨던
사수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이 피워올리는 가슴속 장작불로 인해
저는 동상도 안 걸리고 감기도 안 걸리고 잘 견뎠습니다.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수한 고비를 넘으면서
수많은 무용담을 만들어 오셨던 아저씨들.
그 무용담을 신화처럼 들으며 한진 조합원이라는 자긍심을 키워왔던 동생들,
서로 서로 잘지켜줍시다.
부디 잘 이겨내고 잘견뎌냅시다.
총 맞은 동지들 우리 단결이라는 방탄조끼 입었잖습니까?
버티면 이기는 시간싸움이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
어차피 구제역 때문에 설날 고향도 못갑니다.
저는 우리 한진중공업 조합원동지들 그리고 연대투쟁을 몸으로 실천하시는
동지여러분들을 끝까지 믿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11월 19일
김진숙
댓글을 달아 주세요